나만의 시공간에서 서정의 세계를 마주하는 오영수문학관
프롤로그(Prologue)
오영수문학관 앞마당 한 켠. 아름드리 나무 아래 앉아있는 난계 오영수 선생(1909~1979)의 동상을 먼저 만난다. 그 벤치에 함께 앉아 화장산을 바라본다. 시공간을 넘어 어떤 미지의 세계, 혹은 오영수 선생의 작품 속 어떤 장소에 다다를 것만 같다. ‘숲멍’이라고 해도 좋다. 헤어나오기 싫을 때까지 마음껏 나만의 서정 가득한 세계를 느낀다.
5월은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충만하다. 산, 강, 바다 곳곳에는 봄기운을 느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휴식을 즐기면서 초록의 감성도 가슴에 담고 싶다면 오영수문학관을 찾아가 보자.
이곳에서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기에도 좋고, 숲을 산책하며 숲멍에 빠질 수도 있다. 특별한 계획을 하지 않아도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혼자여도 좋고, 연인과 함께여도 좋고, 아이들과 함께여도, 그 누구와 함께여도 좋다. 그리고, 책멍, 숲멍, 어떤 이름을 붙여도 잘 어울린다.
오영수문학관은 언양성당 뒤편, 화장산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좌우로 즐비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반기는데,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런데, 왜 산 이름이 화장산일까? 분명히 선생의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이름일텐데.’하는 궁금증이 생길 즈음, 그 물음은 금방 해소된다.
오영수문학관 입구는 영남알프스 둘레길로 이어져 있고, ‘화장산 복숭아꽃 설화’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잠시 멈춰 화장산(花藏山, 꽃을 감춘 산)의 유래를 읽으니 그 의미가 새롭다. 천년의 세월을 잠시 거슬러 오는 순간 입구가 열린다.
입구에 다다르면, 저만치서 오영수 선생이 아름드리 나무아래 벤치에 앉아 나를 반기는 듯 하다. 가볍게 눈인사하고 문학관으로 들어선다.
전시관 내부는 오영수 선생의 생애와 서정 가득한 작품 세계가 오롯이 담겨있다. 작은 사진 한 장에서도 절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생이 즐겨 연주했던 악기가 만돌린이라니, 참, 이색적이기도하고 문학 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분야까지 예술적 감수성이 넓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의 데스마스크(death mask)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춰진다. 선생의 아들이자 우리나라 대표 민중미술가인 오윤(1946~1986)의 작품이다. 지그시 감은 눈을 마주하며 문학세계의 깊이를 가늠해본다. 마치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소금인형처럼.
내가 너무 무모한 생각을 한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시선을 위로 올리니, 선생의 1954년 작품 「누나별」에 수록된 한 문장이 가슴을 찌릿하게 만든다. 그리곤, ‘아, 이 문구가 바로 선생의 작품세계 그 깊이를 나타내는 정수 구나!’하는 전율이 느껴진다.
전시장에서 만난 최인식 관장님은 “단편소설 「누나별」을 읽으면 나도 금새 누나를 고향에 두고 온 소년이 되고 말죠. 그리고, 끝내는 내 눈시울도 붉어지고, 내 눈 속에 잠긴 별이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해 주신다.
오영수 선생은 1977년 대한민국예술원상과 문화훈장을 받으셨다. 울산의 대표 문화인물이다. 30년동안 200여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셨다니 저절로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 경외감을 후세 사람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에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벌써 46주기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날은 지역의 문학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의미의 날이 된다. 2025년 올해는 5월 10일에 열렸다.
현재, 오영수문학관에서는 특별기획전이 12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는데, 오영수 선생의 작품집과 함께 김동리, 정지용, 김동인, 염상섭, 최남선, 유치환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오영수문학관 주변에는 야외 벤치와 작은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멍을 누릴 수 있다.
숲멍을 즐기고 싶다면 다시 문학관 입구로 내려오면 된다. 화장산 정상을 오르는 오솔길이 있고, 언양성당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연결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화장산 맨발 산책로를 따라 산림욕을 체험할 수도 있다.
오영수문학관에서 오솔길 따라 천천히 걸어 10분 정도면 언양성당에 다다르는데, 인접해 있어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둘러보아도 좋다.
고딕양식이 돋보이는 언양성당 본당은 1936년 10월 울산지역 최초의 성당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18세기 말 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워낸 ‘신앙의 못자리’로 불린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본당은 맞배지붕을 가진 고딕양식의 건축미가 돋보이는데 울산에서는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사제관은 본당을 지으면서 같은 형태로 지은 석조 슬레이트 건물인데, 현재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신앙유물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언양성당 옆에는 나름의 컨셉으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카페도 있어 커피 한 잔 하며 또다른 여유를 즐길 수 있어 휴식을 한 후 오영수문학관으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특별한 연출이 없어도 연출된 듯한 힐링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에필로그(Epilogue)
언양은 반구대암각화, 영남알프스, 작천정 등 울산의 대표 관광지로 연결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여행하면서, 혹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한 가운데 마음의 안식이 필요할 때 오영수문학관을 들른다면 마음의 위로를 얻기에 충분하다.
오영수문학관
위치 : 울주군 언양읍 헌양길 280-12
문의 (☎ 052-980-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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